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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출연 배우들 수상 직후 모습 [사진 출처: EPA·로이터=연합뉴스]
"오스카는 로컬(지역 시상식)이잖아요"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초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국영화는 왜 단 한 작품도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사이다 답변'을 내뱉었었죠.

그동안 비영어권 영화에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던 아카데미 측은 오늘 보기 좋게 이 비난(?)과 우려를 한 번에 털어냈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무려 4개의 왕관을 안겨줬는데요.

그 바람에 우리 영화사에도, 전 세계 영화계에도 길이 남을 대기록이 쏟아졌습니다.

■"기생충이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다" 긴급 타전

CNN 페이지 1면을 상단을 장식한 수상 소식 (출처: CNN 홈페이지)
먼저 CNN은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처음 'The Oscar Made History Tonight'(오스카는 오늘 밤 역사를 썼다)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현재 CNN 홈페이지 메인 상단에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배우들 사진이 걸렸습니다.

놀라운 건 '기생충'이 새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오스카가 역사를 썼다'고 표현한 건데요. 시상식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대기록이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아카데미 측으로서도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한 겁니다.

CNN 방송도 "'기생충'이 작품상 수상으로 오스카의 역사에 남게 됐다"고 보도하면서 "지금껏 오로지 11편의 국제 영화만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는데 그 가운데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CNN은 또 봉준호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면서 "봉준호를 위한 파티를 준비하라!"고 전했습니다.

■현지 언론사들 앞다퉈 '기생충' 수상을 메인 기사로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머리기사 모습 (출처: NYT 홈페이지)
뉴욕타임스(NYT) 역시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속보로 홈페이지에 실으면서 제목을 "'기생충'이 작품상 수상으로 오스카 역사를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어떤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최고상에 후보로도 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한국영화 '기생충'의 수상은 국제 영화에 대한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AMPAS)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 수상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었습니다.

워싱턴포트스지 홈페이지 메인 모습 (출처: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워싱턴포스트지 인터넷판 중요 기사 역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4관왕 소식이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 신문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는 역사를 쓴 것도 쓴 것이지만, 이 어두운 코믹 스릴러는 사상 처음으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며 '기생충' 수상이 갖는 여러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오스카, 앞으로 달라질까?.."'기생충' 승리로 오스카는 새 전진 가능해져"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요.

이 신문은 "'기생충'의 수상은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AMPAS)을 비난해온 이들이 요구해온 '좀 더 포용력 있는 오스카'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에 수상을 하기로 결정한 자체가 결국 오스카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이 신문은 특히 봉 감독 역시 이날 수상 소감에서 오스카가 과거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이라 불렀던 시상 분야를 올해부터는 '국제영화상'으로 새롭게 이름 붙인 것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상징하는 방향을 지지하고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직후 (출처:AFP=연합뉴스)
AP통신 역시 '기생충' 수상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이번 수상을 "세계의 승리(a win for the world)"라고까지 치켜세웠습니다.

AP통신은 특히 "'기생충'의 수상은 오랜 세월 외국 영화를 낮게 평가해오는 데 만족해온 미국 영화상에 분수령이 됐다"면서 "이 같은 결과는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들은 다양성이 부족하고, 여성 영화제작자들이 후보에게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와중에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생충'의 승리는 할리우드의 전격적인 변화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전진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르 몽드’와 ‘가디언’지 인터넷판 (출처: ‘르 몽드’와 ‘가디언’ 홈페이지)
세계 다른 유수 언론들도 앞다퉈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변화한 아카데미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지금껏 '인생은 아름다워'를 포함해 오로지 10편의 외국어 영화만이 오스카 작품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작은 없었다"면서 "지난해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도 결국에는 미국 영화 '그린북'에 밀렸는데 그런 결과는 수긍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습니다.

'가디언'은 이어 "아카데미 측은 자신들의 포용성과, 봉 감독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언급한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며 상을 주게 된 배경을 분석했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크게 다뤘습니다. 르몽드는 인터넷판 머리기사를 기생충 수상 뉴스로 바꾸기도 했는데요. 제목은 "4개의 오스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이 밤 위대한 승리자가 됐다"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층간 격차를 비극적으로 풍자한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 글로브를 받더니 마침내 아카데미까지 석권했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앞으로의 변화를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봉준호 감독이 '로컬 시상식'이라고 표현했던 오스카는 이제 최소한 '미국 현지색'만은 조금이나마 벗은 모습입니다.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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